• 5. 당근 알바

    5. 당근 알바

    우연히 광고를 통해 당근 알바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근앱이 단순히 중고거래를 하는 수준에 넘어 다양한 기능을 한 앱으로 성장해 왔던 것이다.

    당근 알바에 신호수를 구한다는 글이 보인다. 다행히도 집앞에 있는 콘크리트 공장이었다. 알아보니 규모가 꽤 커다랗다. 난 여기에 신청을 했다. 생산직 6개월 근무했습니다. 집하고 가까워 신청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라고 적었다. 내일 나올 수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하고 나는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아침밥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작업화를 신어야 해서 조금 불편했지만 일당이 11만원이라 만족했다. 후에 알게 됬지만 이 일이 직업소개소 같은 용역업체 프리렌서를 구하는 일인줄 알게되었다. 이건 4대보험이 없다. 정직원이 아니라서

    주로 하는일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이동하는거였는데 호루라기를 불어 중량물이 작업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이동 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정혀진공간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일이었다. 발은 아프지 일은 지루하지 꽤나 고생했었다.

    4일쯤 근무했나 이젠 그만 나오라고 한다. 내가 일을 잘 못하는지 더이상 부르지 않고 직업소개소 사장이 이번엔 지코라는 회사에 가보라고 한다. 5일쨰 되는날에 지코에 갔더니 거기 사장이 화기 안전에 대한 일을 하라고 한다. 사장이 용접을 하는동안 불 안나게 감시하는 일이었다. 소화기를 근처에 두고 나는 사장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떻게 보면 꿀알바 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돈이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용역업체 사장한테 일한 돈을 달라고 했다. 다음날 56만원이 들어왔다. 11만원 4번에 12만원 1번이 들어온 것이었다. 꽤나 쏠쏠했다. 더이상 일이 없는지 나는 당근알바에 다른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식품회사 제함기 op 를 구하는 글이었다.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 보통이면 왠만한일자리들 경쟁이 심해서 일자리구하기가쉽지않은데 여긴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던것이다. 조건은 잔업2시간이 필수이다. 토요일근무는 선택이지만 글을 읽어보면 해야할 눈치이다. 여기에 지원을 했다. 일은 힘들겠지만 한달 월급을 계산해 보니 350만원 수준이었다. 소득세 3.3%를 때도 말이다. 하루 일급이 138000원 정도 였다. 나는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다른곳처럼 이력서를 쓸 필요도 없이 사람을 바로구해 바로 일자리에 투입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지원을 했고 곧바로 출근을 했다.

    이제 조현병과는 거리가 멀어진 기분이다. 그래도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다. 다시는 악몽이 반복되지 않기위해서라도 말이다. 엄마가 내 꾸부러진 왼손의 모습을 보시곤 자주 풀어주신다. 약의 부작용이 남아있다. 내 모습이 꾸부정 해보인다고 하셨다.

    일은 쉬웠다. 쉽게 적응하고 잘 나갔었다. 제함기는 박스를 제함기에 넣으면 제함기가 알아서 박스를 열어 아래에는 테이프가 감기고 박스에 물건을 담을 수 있게 하는 기계였다.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파란색 사이즈가 다른 박스들이 있다. 세팅도 따로 해줘야 한다. 정해진 숫자에 맞춰서 세팅을 해준다. 그러면 높낮이가 맞춰진다. 밥 박스도있다.

    일을 한지 2개월쯤 이었나 공단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전화가 온것이다. 220만원(세전)에 8시간 일하는 것이었다. 자재물류라는데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고 아쉽지만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4개월쯤 되었을때 새로운 설비가 들어오고 일이 바빠지게되었다.밥을 잠시 쉬고 치킨박스가 들어오는데 해야하는 물량이 기존에 일하던 양에 비해 엄청났다. 제함기는 오류가 자꾸나고 나는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위기상황에 대처를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일에서 빠지게 되었다. 더이상 제함실에서 일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짤리는줄 알았다.

    그런데 용역대표가 전화를 걸어올 때 다른 일자리가 없냐고 했을 때 다른 파트에 할 다른 일이 있다고 거기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불덩이 솥단지

    다른파트에서 일한 첫날은 지옥이었다. 오징어를 삶아야 하는데 이많은 오징어를 나혼자 다 삶으라 한다. 일 가르치는 분도 대충가르치고 그냥 가버렸다. 문제는 온도였다. 여기는 환풍이 안되고 뜨거운 열기에 죽음을 느낄 수준의 공포를 느꼈다. 일하는 분위기가 어떻냐면 군대에서 볼법한 커다란 솥단지에 건지고 삶고 반복해야만 했다. 나는 너무 목이 말라 거기 있던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염소냄새가 나긴했지만 우선 살고 볼 일이었다. 이 일을 차장님에게 말하고나선 다음주엔 자기가 도와줄 사람들 붙여준다고 했다. 파트가 바뀐 이 일을 계속 해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만둘 생각까지 있었다.

    공단아저씨한테 전화했다. 혹시 일자리 없냐고 말이다. 네 라고 대답만 할 뿐 별 말이 없었다. 기다려야 할듯 하다. 파트가 바뀐곳은 5시 30분에 끝나 추가근무도 하지 않는다. 다행히 불덩이에 들어가는 날은 일주일에 한번이고 나머지 날에는 야채 계량을 해야한다. 야채계량은 쉬운일이다. 야채를 소분해서 비닐에 담아 냉동창고에 넣어두는 일이다. 크기도 다루는 것도 다양하다 0.6키로에서 11.25키로까지 그리고 15키로되는 나에겐 꽤나 무거운 야채를 냉동창고에 싣고 날라야 한다. 이 공간에 한 가지 단점은 퇴근후에 기름 쩐내가 심해서 세탁을 자주했어야했다. 토요일근무도 없다. 월급을 계산해보니 237만원이다. 뭔가 공허해진 기분이고 아쉬운 생각이든다. 월급이 1/3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아쉬운일이다. 일단은 새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녀야 할 듯 하다.

    2주차 불덩이에 들어갈 날이다. 이번엔 차장님이 일을 도와주신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온도를 체크하는데 36도까지 올라간다. 습기는 70이상이었다. 작업을 후딱하고 빨리 끝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역할분담도 하였다. 하지만 오후에는 시간이 안되셔서 청양고추와 당근은 내가하고 마무리 청소 특히 하수구청소는 내가 해야만 했다. 청양고추는 삶기시작하면 엄청난 기침을 유발한다. 화생방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3주차가 되었다.

    조현병 약은..

    나는 평일에 병원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가곤 했다. 상담을 하기도 했고 약만타는일도 많았다. 상담을 해봤자 일상적인 얘기들 뿐이라서 아쉬웠다. 내가 정신병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조현병 약은 5개를 먹는다. 아래는 처방전과 인터넷의 도움을 받았다.

    명인할로페리돌정5밀리그램 – 이게 반쪽짜리 연두색 약인가보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싱병적 증상에 사용 부작용은 몸이 뻣뻣해지고 움직임이 느려짐을 느낀다는데 내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왼손이 꾸부러지는게 이 부작용인듯 하다.

    환인벤즈드로핀정1밀리그램 – 할로페리돌의 부작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약이다. 하지만 역시 부작용이 있다. 바로 변비

    큐로켈정100밀리그램 – 항정신병약이고 조현병 치료에 사용된다는데 졸림이나 어지러움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직까진 어지러움은 안느껴봤지만 아침에 졸립고 출근 운전하면서 졸음에 위험하긴 한 편이다. 이것 때문에 잠을 억지로라도 크게 늘려 8시간정도 자는 편이다.

    삼진디아제팜정5밀리그램 – 불안과 긴장을 줄이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조현병 자체를 치료하는 주된 항정신병약이라기보다 진정 효과를 보기위한 약이라고 한다.

    로라반정1밀리그램 – 벤조디아제핀계 항불안제 진정제에 속하고 이것도 졸립게 한다고 한다.

    왜 이 약을 저녁이후 9시즈음에 먹을까? 난 병원에 있을 때 9시즈음에 약먹고 바로 잤었다.

    그리고 술도 안먹기 때문에 다행이다. 술을 먹으면 약으로 인한 진정효과가 쌔져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그밀 아침저녁과 아기오를 저녁먹고 식후30분이나 바로 먹었다. 아기오가 병원에 없기도 하고 재고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좀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약국마다 수소문을 하여 다행히도 집근처 약국이 아기오를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총 7개의 약을 먹는다. 5개는 조현병을 위한 약 2개는 변비를 위한 약이다.

    앞으로의 인생

    병원에 나온지 이제 3년이 되어간다. 참으로 긴 시간이 지났다. 일은 적응했다. 조현병도 통원 약물치료로 잘 버티고 있다. 손을 꾸부리는 것만 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오백만원 정도를 모았다. 주식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고 저축하기로 결심했다. 사회생활도 만만치는 않다. 매일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쑤시다. 근육통이 있다. 그래도 출근한다. 딱히 방법이 아직 내겐 없다.열심히 사는 수밖에.. 부모님 나이도 이제 70대이니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같은 경우는 약을 끊고 재발한 경험이 있기에 조현병 약을 늙어 죽을때까지 먹는거라 들었다. 약을 꾸준히 먹는것에 조심해야한다.

    나는 높은곳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었다. 부모님에게 피눈물 흘리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무모하고 어리석었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것에서 부터 작은것에 반응해 큰것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돌아본다.

    이제는 조현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그래도 약은 꾸준히 먹어야겠지 않겠는가. 다시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다시 병원에 가게된다면 그땐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빵 간호사가 했던말이 기억이 난다. 4번째 돌아온 사람은 치매걸린 환자 같다고.. 그 말을 듣곤 더이상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나이가 서른여덟인데 결혼할 나이아닌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는 여자가 없다. 친구도 없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형도 늦은 나이에 소개받아 그 형수가 될 사람과 결혼을 할 예정이다. 참 기쁜 일이다. 난 형이 결혼을 안하고 혼자 계속 사는 줄 알았다.

    조현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이 많은줄 알고있다. 나도 그 많은 조현병 중에 한 케이스이겠지만 아직도 병원에 살아야 하는사람 통원치료하는사람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분들도 새로운 신약이 나와서 조현병을 더 잘 다스리는 완치할 수 있는 병이 되길 내심 기대해 본다.

  • 4. 자유병동

    4. 자유병동

    그림처럼 그리 좋진 않지만 전에 말했던 외출을 자유롭게할 수 있는 그 병동이다. 현재 사람이 꽉차있는데 곧 나갈사람이 있다고 의사가 알려줬다. 6개월쯤 지났을 때였나 난 자유병동에 갈 수 있는 0순위 였다. 자유 병동에 배정을 받은날 친구들에게 인사를하고 짐을 챙기고 새로운 병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방에 예전에 봤던 범수 형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상태가 안좋아 보인다. 예전 밝던 모습이 안보이고 제스처들이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건강검진을 하러 병원에서 피뽑다가 잘못 뽑았는지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들었다. 그런일을 겪고나서 긍정적으로 보이던 사람이 한순간에 바뀔줄은 몰랐다. 그리고 전에는 담배로 고생했었는데 이젠 담배도 하루 몇개씩 제한된 량만 제공하고 내방에 있는 한명의 환자만 담배를 핀다. 자유병동에 오니 형이 추가로 믹스커피도 보내주고 두유 멸균우유도 보내주었다. 여기는 2시가 간식시간이다. 난 매일마다 두유와 멸균우유를 마시곤 했다.

    외부병동 병실사람들

    우선 입구에보면 눈에 띄는 간호사가 있다. 남자간호사. 이병원에 유일한 남자간호사다. 이것저것 다 챙겨준다. 그리고 환자들의 상태를 보자면 확실히 폐쇄 병실보단 상태가 나은 사람들이 많다. 내방의 환자들은 5명인데 확실히 예전 매트리스보단 덜 딱딱했다. 이 점이 정말 좋았다. 범수형 그리고 10시만되면 매점이 열어서 콜라와 포카칩을 사들고 나눠주는 형 이 있었다. 1.2리터 팹시콜라가 3천원이나 한다. 어마무시한 가격인데 이 형덕분에 콜라를 맘껏 마시곤 했다. 덕분에 병원에 있는 1년 2개월동안 내 뱃살의 변화가 많이 있었다. 엄청 나왔다. 한 5kg는 쩠다. 그러고 나머지 같은 병실환자는 안타갑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보호사는 밤에 약먹을 시간에 간호사와 같이오고 아침 새벽에 잠깐 방문한다. 그리고 병동이 남자는 1,2층 여자는 3층이다. 여자 환자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 잘가는게 사회복지사 선생과 보내는 시간이다.

    노래방 99점

    수요일은 노래방 시간이다. 한시간 가량 20명이되는 사람들이 한곡 씩 노래를 부른다. 나는 주로 나얼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날따라 김범수의 보고싶다가 떠올랐다. 나는 불렀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고음은 올라가긴하는데 그리 좋은 목소리는 아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점수판을 보니 99점이었다. 아쉽다 1점이 아쉽다. 100점을 받으면 미니간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아까웠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이뻤다.

    신경섭 목사님

    월요일에 서울을 가시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정신병원에 환자를 챙기시는 정말 열정적인 목사님이시다. 매일 11시에 밥먹기 전까지 성경낭독을 돌아가면서 하면서 설교를 해주신다. 참여자는 6,7명 정도 나도 참여했지만 나중엔 화가 나서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일요일에는 외부병동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찬양하고 성경말씀, 설교를 듣는다. 코로나에서 조금 풀린 시기라 그런지 다같이 모여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폐쇄 병동사람들을 위해 마이크 예배를 드리러 가신다.

    산책

    산책이라해봐야 별거없다. 그냥 크게 동그랗게 병원 주변을 도는 것이다. 크기는 제법있어서 걸을만 하다. 예전에 축구를 했었는지 버려진 축구골대가 보이는 곳이다. 돌다보면 매점도보인다. 산책에는 제한이 있다.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나가면 cctv로 보고있는 간호사가 긴급하게 차타고 잡아와 독방에 하루 가둔다. 내가 그럴뻔했다. 그런데 병원의 끄트머리 쪽을 보면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정상적인사람들로 보이는데 정신병원에 외부사람이 있는게 신기했다. 목사님에게 물어보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인 사람들이라한다.

    꼬리뼈

    꼬리뼈가 너무아프다 생활하기 곤란한 지경일정도로 아프다. 똑바로 누워잘 수가 없어서 옆으로 잠을 청하곤 했다. 폐쇄 병원에있었던 딱딱한 매트리스 때문이었다. 간호사에게 말한 후 바깥 병원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고 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돌아와도 나아지질 않는다. 다음주에 또 갔다. 이번엔 의사에게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느냐는 말에 똑같은 치료를 해줄 뿐이다. 엑스레이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아프다. 두달이 지나고 나서야 내 꼬리뼈는 차츰 나아졌다. 바깥 병원을 갈 수 있어서 나는 치과에 가 충치 치료를 하기도 했다.

    핸드폰

    자유병동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 예전처럼 전화카드를 쓰는게 아닌 정말 핸드폰을 쓸 수 있었다. 전화통화도 맘대로 하고 게임도 많이하기도했다. 제한된 데이터로 게임을 하곤 했는데 데이터가 너무 턱없이 부족한게 아쉬웠다. 무한제 데이터 요즘제로 변경하자니 부모님 부담이 너무 컸다. 이동통신사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주로 했던 게임은 좋은피자 위대한 피자 이다. 피자만드는게 정말 재미있었다. 따로 캐쉬템 지를필요없이 편안하게 피자 만들기를 했다. 두번 째로 즐긴 게임은 벽돌깨기 퀘스트 이다. 각도를 잘 제어서 많은공이 많은 벽돌을 부시는 게임이다. 그렇게 게임만 하다보니 병동에 가만히 있는게 지루하기 일쑤였다.

    변비

    조현병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변비가 꽤나 심해젔다. 기억해보니 2번째 입원을 할때에 15일간 변을 못싸서 하필 국수 특식이 나온날에 변을 힘겹게 보고난 일이 생각났다. 당시엔 변비약을 먹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간호사에게 얘기 했다.

    내 추가 처방은 아침 저녁에 마그밀을 먹기이다. 변을 부드럽게 해주는 약이란다. 그리고 저녁에 아기오란 약을 처방받았다.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되어 변을 잘 만들어주는 약이라 한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같이 물똥이나 길쭉한게 나와 장이 편안했다.

    하루일과

    내 주로 하루일과는 아침먹고 자고 점심먹고 프로그램가고 낮에 하루온종일 데이터가 달지 않는 게임만 주구장창하고 저녁먹고 한동안 못봤던 예능방송을 몰아보곤 했다. 당시 tv에는 btv가 깔려있어서 못봤던 예능방송을 볼 수 있었다. 런닝맨,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을 주로 봤다. 이상하게 핸드폰이 있으니 가족과 전화하는 횟수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하루는 폐쇄병동 입구에 앉아있었는데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걸 보았다. 이걸다 읽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에 한권씩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된 책은 그냥 넘겨버리고 최근 책들을 읽었다. 그것도 2000년대 책들이다. 한권 씩 빌려가면서 읽어나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만화로 된 삼국지였다. 50여권이나 됐던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특별히 하루에 5권이나 빌려주시면서 보호사가 가저가 읽으라하셨다. 나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퇴원

    그렇게 다시 가을이 끝나가고 2023년 11월 1일 엄마가 퇴원 준비를 하란다. 내 병이 어느정도 나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도 상태가 좋아젔다고 느꼈다. 11월 3일 형이 차를 끌고 엄마와 아빠가 찾아왔다. 나는 수많은 책들과 옷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했다. 아는 그냥 멍하게 포옹했다. 엄마는 내모습이 좀 굳어보인다고 했다. 얼굴표정과 몸이 굳어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약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집

    집으로 돌아오니 집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아빠는 내방에 벽걸이 에어컨과 킹사이즈 침대를 사주셨다. 오랜만에 온집이라 그런지 낮설게 느껴진다. 나는 엄마에게 확답을 했다. 약을 잘먹겠다고 그리고 다신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첫째 할 일은 직업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회생활을 그리 오래한것도 아니고 직업을 안 구하고 산지 10년이 가깝다.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한 동안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태조왕건 야인시대 같은 고전 명작을 즐겨찾아보기 시작했다.

    주식

    지금생각해보면 이걸 건드리지 말았어야했다. 내가 모아놓은 돈이 얼마 되지도 않고 엄마가 주는 돈으로 주식을 손댔다. 하는족족 한국장이나 미장이나 마이너스 치기 일쑤였다. 나는 2024년부터 2025년 중반까지 엄마돈 1억을 날려먹었다. 엄청나게 큰돈을 조금씩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장애인 등록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어서 나는 충북기독병원의 통원치료를 받으며 대빵 간호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간호사는 장애인 등록을 하라고 하고 장애인 공단을 통해 취업을 알선 받으라고 얘기를 들었다. 나는 장애인 등록을 했더니 2달 뒤쯤인가 경증 장애인 진단을 받게 되었다.

    통원치료

    나는 약을 꾸준히 먹어야 했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 찾아가야 했다. 형이 초기에는 운전해줘서 충북기독병원에 같이 가주었지만 나중엔 바빠서 내가 운전해 가기도 했다. 그러다 의사 말이 환자가 가득차서 나처럼 통원치료 오는 환자를 추가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법적으로 의사가 볼 수 있는 환자수가 제한되어있는데 나까지 받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서울대 병원으로 갈까 싶기도 했지만 가까운 진천읍에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어서 여길 방문하기로 했다. 환자가 정말 많다. 나는 처음오는 환자라 그런지 대기시간이 2시간이나 걸리고 나서야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고난뒤 내가 조현병 장애인인걸 알고는 약값을 할인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조현병환자는 나라에서 약값을 조금 부담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알려줬다. 충북기독병원보단 한 40%는 감면 받은 듯 하다. 약도 바뀌었다. 두알짜리로 먹어야 했던 약이 반쪽 연두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어보니 기존에 먹던 두알의 역할을 하는 반쪽짜리 약이라 한다.

    취업

    장애인 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한 아저씨가 받는다. 난 이 아저씨가 소개해준 첫 직장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보건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발급받기도하였다. 액상 커피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다가오는 커피 팩을 받아 뒤집어 놓는 작업이었다. 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15일만에 그만뒀다. 여자도 하는 일이라고하는데 나는 도저히 버티질 못했다.

    공단아저씨가 장애인 취업성공패키지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다. 첫기념에 20만원인가 받았고 3개월근무하면 30만원 6개월근무하면 40만원 12개월 근무하면 50만원인가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청주에 내려가 이걸 신청했다. 조건은 회사가 4대보험에 해당하는 회사여야 했다. 장애인 취업 알선해주는 곳도 대부분 4대보험에 드는 회사라 알려주었다.

    한달뒤 두번째 취험할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일은 하루에 4시간 일하는 것이다. 점심따윈 없었다. 다른 장애인 아저씨 아줌마 한명씩 같이 취업하게되었다. 아저씨는 어디 사장자리 하다가 8시간 일하는게 싫어서 4시간 근무하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 아저씨는 왼손에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없었다. 사고로 짤리게 됬다고 알려주었다. 여사님은 허리가 구부정 해 키가 작으셨다. 이분들과 마스크 팩 만드는 공장에 취업했다. 한달 월급은 4대보험을 빼면 90만원 수준이었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할만한 일이어서 계속 다녔다. 그런대 회사 대표가 월급을 15일 20일 동안 주질 않는다. 자꾸 미뤄서 준다. 이 일 때문에 다른 공장 아주머니들이 월급도 주지 않는 공장에서 더 일할 이유가 없다며 나가버렸다.5개월째였다. 카톡에서 이상한 문자를 받았는데 회사대표가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아저씨도 진작에 그만두었고 여사님은 계속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도 이사실을 공단에 알리고 6개월 채우고 그만두웠다. 2개월쯤 쉬는동안 나는 알바몬 알바천국등 알바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했다. 공단에서 연락이 잘 안오던 시기였다.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일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런 저런곳에서 취업 제안이 들어와 이력서를 들고 가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택배일을 하는 고수익 직업도 구해보려했는데 조현병환자는 안된다고 한다.

  • 3. 신호등

    3. 신호등

    예전에 딱딱 소리가 났었다면 이번엔 눈에서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나도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신호를 내 오른쪽 눈을 통해 주기 시작했다. 깜빡깜빡 내 눈동자가 움직인다. 내가 옳은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눈동자가 앞뒤로 움직인다. 마치 노란색 점멸 신호등 처럼 말이다. 맞지 않은 말을 하면 좌우로 흔들 거린다. 내 신체가 조종당하는 너무 끔찍한 상황이지만 난 이때 이런 현상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빠져있었다. 이 현상은 의외로 꽤 오래 있었다. 난 도데체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이 깜빡이에 조종당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완전 미처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려고하다.

    2021년 10월 말이다. 아침이다. 배란다에서 해를 처다본다. 부모님은 내 상태가 말이 아닌 걸 알고 119를 불렀다. 나는 해에서 천사와 악마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30분쯤 보고있었을까 경찰들도 왔다. 나는 꾸준히 집중해서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데 경찰이 자꾸 문을 닫으려한다. 나는 닫지 말라고 했다. 뒤에 있던 경찰이 “다 끝났다” 하는 순간 해에서 전쟁이 멈췄다. 엄마는 나를 방에서 부르고 요구르트 한잔을 마시라해서 마셨다. 컴퓨터를 켜려고 했더니 ‘컴퓨터는 안되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원을 켜는 순간 정말로 컴퓨터가 켜지질 않았다. 전기도 다 들어오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두려웠다. 그리고나서 ‘내가 죽어야 끝나’ ‘내가 죽어야 끝나’ 라는 소리가 맴돈다. 나는 경찰 소방관들이 경계를 낮추는 순간 갑자기 창문을 향해 뛰고 문을 열고 실외기 설치하는 곳에 착지 했다. 밑에는 소나무가 뺵뺵히 솟아있는게 보인다. 뒤늦게 들어온 소방관이 고함을 지르며 손을 내민다. 나는 한동안 실외기 칸 안에 서있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소방관이 내민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소방관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엄마와 아빠는 저멀러서 무슨종이에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정신병원 입원 동의서 였다. 나는 가기 싫다고 발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나를 강제로 끌고 내려갔다. 수갑보다 더 쪼이는 끈을 등뒤에 묶는다. 너무아프다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두 소방관이 하는 이야기가 거슬린다. “:들어오지?” “어 들어와” 뭐가 들어온단 말인가.

    세번째 입원

    1시간을 달려 예전에 입었했던 정신병원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새로 보이는 의사 선생이 보였다. 기존의사보단 나이가 좀더 있어 보였다. 그리곤 뭔지 모를 서류에 사인하게하고 방 배정 받고 자리 배정을 받았다. 폐쇄 병동에 다시 찾아왔다. 침대가 딱딱하다. 매트리스가 아주 오래된 싸구려다. 저녁을 먹으라고 하는데 먹기 싫었다. 그냥 굶어죽고싶었다. 눈의 깜박이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었고 나에게 말을 걸었던 ‘내가 죽어야 끝나’가 계속해서 생각이난다. 간호사는 밥을 안먹으면 주사를 놓겠다고 겁박했다. 그래도 안먹었다. 배가 고프질 않았다. 다음날 나는 식사를 먹는 시늉만 하고 나머진 버리기를 자주 했다. 3일이었나. 그때쯤 배고팠는데 식사를 3끼를 먹지않고 한끼 만 먹었다. 약도 먹기 싫었다. 처음에는 먹었지만 나중에는 먹지 않았다. 약을 먹고 입을 벌리는 시늉을 해야 약먹었다는 확인을 받는데 나는 그 7알되는 약들을 잇몸 위에 숨기고 입벌리고 통과한뒤 변기에 뱉어버렸다. 병원에서 조차도 잠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 이상한일이 일어났다. 심장 오른쪽이 깜박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젠 눈이아니라 가슴에서 깜빡임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었는데 하나만 기억이 난다. “지옥은 어때” 라는 물음에 발걸음이 점점 더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린다. 지옥을 아는 악한자가 내게 속삭인 것이었다. 누구였을까 난 몹시 궁금했다.

    더이상 속삭이는 소리는 들리진 않았다. 대신 깜빡이는 남아있었다. 오른쪽 눈에 그리고 가슴에.. 아마도 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거 같다. 어느날 밤이었다. 계속 약을 안먹고 있을 때 내 병실에는 6인자리가 있었지만 아직 5인이 있을 때였다. 난 내가 앉은 자리가 너무 딱딱하고 오른쪽에 앉은 아저씨는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리를 옮겨 자려고 했다. 그런데 비명소리가 들린다. 잠에 깼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니자리로 가서 자라고 한다. 이 아저씨에 대해 할말이 많다. 별수 없이 내자리로 돌아가 자려는데 이젠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마치 옆에 스피커가 있는거 마냥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그리곤 잠이 들었다.

    한 일주일 동안에 저녁에 주는 약에는 특별한 약이 있었다. 크기가 좀 크다. 그리고 뭐라 써있었다. 난 이것 때문에라도 더 거슬려서 약을 먹은척 숨기곤 하였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

    문입구를 기준으로 나는 왼쪽 가운데 자리에 있었다. 나만 매트리스가 다르다. 딱딱한 이유가 있다. 이게 나중에 큰 문제가 되었다. 내 왼쪽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얼굴표정 제스처등으로 말을 대신하는 아저씨가 있다. 오른쪽에는 코골이 아저씨 아침마다 식후 믹스커피를 마신다. 이 믹스 커피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내가 퇴원한 뒤 많은 변화가 있었나보다. 보호사(남자 가드 역할을 하는 직원)가 나눠주는데 매점에서 구입한것이 아니라 가족이 보내준거라 했다. 매점가격이 일반 물가와 비교해 장난이 아니게 비쌌었는데 보통 30%는 더 비쌌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족을 통해서 택배를 붙여 가능한 외부 물건만 반입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맞은편에 있는 아저씨 이 아저씨는 엄청 가난한지 외부 간식도 들어오지 않고 오른쪽 아저씨의 커피를 조금만 나눠달라고 매일마다 때를 쓴다. 내가 라면 먹을때에도 국물을 달라고 하고 먹을것만 보이면 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거부당한다. 왼쪽 맞은편 5살 높은 형 이형은 “내가 동생할테니 먹을거를 줘”라 한다. 뭔가 정신연령이 낮아 보였다.

    TV

    tv를 보는데 다른 환자들은 관심이없는지 다행히도 내가 보고싶은걸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루 온종일 기독교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목사님이지만 그분의 설교가 기억이 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늦어서 되돌릴려면 무슨 소용이냐 있을 때 잘해야지” 라는 말씀이 내게 다가왔다. 난 너무 깊숙히 이 조현병에 들어온 것이다. 약을 끊지 말았어야 했다. 그 경고를 무시한 댓가는 지금생각하면 너무 참혹스럽다. 그리고 전화상담및 기도를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저 조현병에 걸렸어요 치료받길원합니다.” 라고 전화하는 사람이 있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나이도 나보다 어린데 병은 꽤 깊어 보인다. 약물로도 해결이 안되는 조현병으로 보였다. 그 목사님은 절실하게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러다 하루 온종일 기독교 방송을 보는 내 모습을 바라본 한 간호사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다른채널로 돌리고 꺼버렸다.

    보호사

    간식을 10시가 되면 보호사가 소량씩 나눠주는데 나도 부러워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먹을 것좀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찾아오니 추리닝 바지와 윗도리도 달라고 했다. 엄마는 보내줬고 달달한 차 위주로 보내줬다. 그런데 보호사가 내 추리닝 끈을 싹둑 짜르는 것이다. 이걸 왜짜르냐고 하니까 목을 맬 위험이 있어서 짜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은 긴때밀이도 없다. 짧은 때밀이만 혀용된다. 보호사가 하는 역할은 다양하다. 싸움이 났을 때 중재하기도하고 환자들과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대부분 50대 아저씨들이다. 그리고 전화 시간이되면 전화시간을 조절한다. 나는 항상 전화를 오래해서 꼴찌로 전화하곤 했다. 내가 당시 집에 있을 때 상황 하나 하나를 열거해서 엄마에게 말하곤했다.

    의사

    병원에는 의사가 3명이 있다. 담당의사가 아닌 다른의사에게 내게 나타나는 현상 깜빡이는 현상을 얘기 했더니 당황하고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해결방법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버리더라. 이 남자 의사는 얼마 안있다 그만 뒀다. 내 담당의사에게는 내가 겪었던 일 하나하나 에피소드를 매일 말해주곤 했다. 듣는 것은 잘해주는데 대답은 영 내키질 않는다. 컴퓨터가 안켜진 현상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컴퓨터는 다시 켜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약잘먹고 다 지나갈 일이라 나를 안심시켰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안먹던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뒤에 깜빡임 현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약은 한알 먹던것이 6개로 바뀌어있었다. 2주뒤 5개로 줄었는데 지금 3년째 먹고 있는 약과 동일하다.

    친구

    내가 병원에 나온사이에 꽤 많은 환자들이 바뀌어있었다. 기존에 남아있던 환자들도 있었고 처음본 환자들도 있었다. 그중에 두살어린 나보다 키큰 친구가 나와 친구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친구는 멀쩡하게 생겼는데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그 친구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뭐 보이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뭐가 보이냐고 물으니 똥꾸멍이 보인다고 했다. “똥꾸멍?” 텔레비전에서 그게 보인다고? 그것 때문에 텔레비전을 잘 보질 못한다고 했다. 뭔가 알 수 없는 특이한 병이다. 그 친구와 복도를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걷기운동을 많이 했다. 당시에 배가 많이나와서 살을 빼긴 해야했는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였다. 밀폐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한겨울에도 땀이난다.

    새로운 환자

    5명이었던 병동이 이제 6명이됐다. 옆방에 있던 환자였는데 우리방으로 들어오게 된것이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였다. 자주하는 행동은 볼에 바람넣기다. 뭔가 이상해보인다. 그리곤 딸XX시늉을 하는데 예사롭지 않아보인다. 하루는 복도를 걷는데 그형이 보인다. 처음엔 그냥 지나첬지만 뒤돌아보는순간 아. 딸XX를 진짜 치고 있던거였다. 간호사를 부를일인가 보호사를 부를일인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왼쪽 맞은편환자는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 태원했고 윗층에있던 환자가 내려왔다. 그 형은 내가 보는 기독교방송을 못보게하고 리모컨을 빼앗았다. 난 더이상 tv를 보지 않았다.

    형이 맛있는 과자들을 잔뜩 보내줬다. 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몇몇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주기도 하고 그많은 과자를 매일 조금씩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엔 책을 10권이나 보내왔다. 따분한 공간에 책이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대부분은 형이 대학생시절 읽은 책으로 보인다. 책은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재미도있지만 딱히 할일이라고는 책읽는 시간 뿐이었다.

    그러다 깜빡이가 다시 나타나다 말다 희미해지다가 나타나기도 한다. 약을 먹고나서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 2. 정신병원에 도착

    2. 정신병원에 도착

    도착한 곳은 충북기독병원 꽤 오래된 낙후된 병원입니다. 이곳에서 살게되었습니다. 시간이 4시 30분 식사부터 하게되었습니다. 반찬은 부실했지만 먹을만 했습니다. 그리곤 6시 였나 7시즈음에 약을 먹었습니다. 병실에는 약 6인 정도가 있었는데 제가 있던 병실의 환자는 이러했습니다. 한 아저씨는 뇌수술을 받았는지 뇌의 일부분이 없이 잘려져 나가있었고 오른쪽에는 성경을 아끼던 어떤 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만 찾는 그리곤 보진 않는 20대 초반 어린애도 있었고 정상인처럼 보이는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tv가 있었는데 없는 병실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름을 다 기억하지만 지금은 이름을 너무 오래되서 그런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당시에 먹었던 약은 올란자핀 자이프렉사 한 알 이였습니다. 오전 6시가 아침식사인데 너무 졸려워서 먹고 바로다시 자곤 했습니다. 그 다음날 밤 날이 추워 천장에 설치되있던 난방기가 소리가 납니다. “딱 딱 딱” 전 이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조현병 초기에 들었던 그 소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기 위해 이 소리를 듣게 한거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병원의 일과

    정신병원의 일과는 단순합니다. 아침 5시 50분에 아침먹기 자거나 tv보기 11시 45분에 점심먹기 4시 45분에 저녁먹기입니다. 약은 환자마다 다르지만 식후 한시간이후에 먹었습니다. 아침 10시 30분에 산책을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제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추워서 하지 않았습니다. 10시에는 간식시간이었는데 돈을 미리 넣어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 미리 신청하여 간식 리스트에 있는 간식을 적고 환자들을 관리하는 남직원(명칭이 있었는데 까먹음)에게 제출을 합니다. 그러면 화요일에 간식을 받습니다. 문제는 간식 도둑들이 많아서 환자들끼리 싸움도 나고 밤에 몰래 훔치다 걸리기도 하고 그래서 대부분이 화요일에 일주일치 간식을 다 먹어버리기도 합니다. 2시에는 사회복지사가 화수목금 별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화요일은 다른그림찾기 종이를 주면서 찾는 걸 하고 수요일은 노래방, 목요일은 그림그리기 금요일은 영화보기를 한시간 가량 합니다. tv도 재미 없어서 옆에 있는 형에게 성경을 빌려 하루종일 성경만 들이다 봤습니다. 개역개정 전의 성경입니다. 토요일은 아무것도 없고 일요일은 예배시간인데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방송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문제는 스피커 상태가 좋지 않은지 뭐라고 하는지 집중도 안되고 잘 듣지 못하였습니다.

    의사와의 상담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저 단순한 질문만 끝내고 다른 환자 보러가기 바쁩니다. 제가 질문을 꺼내지 않는 이상 그냥 가버립니다. 저녁 8시쯤 되면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개인당 3000원 주고 살 수 있는 전화카드를 구입후 충전식으로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엄마와의 통화가 길어 항상 나중에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머리를 잡아당긴날에 머리가 많이 뽑혀 나갔다고 했습니다. 차츰 내가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병이 깊진 않은지 2개월정도 정신병원에 있은 후에 퇴원을 했습니다.

    집에 온 후

    집에 온 후 집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살던 그 집과 분위기가 뭔가 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딱”소리는 나진 않지만 집이 예전 집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 이마가 좌우로 갈라진게 보입니다. 엄마는 팔자주름에 심히 파인 흉터가 보입니다. 제 눈이 정상이 아닙니다. 이걸 알려주고 난 뒤 부모님은 아직 내 병이 낫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재입원을 권고 했다. 나도 받아드렸다.

    재입원

    병원에 가기전에 친절한 환자가 두명 있었는데 변기가 믹힐 때 뚫어주는 착한 두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한테 보답하고 싶어서 파리바게트 빵과 두유를 선물해주려고 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니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나를 병원에 내보냈다. 코로나 음성인지 양성인지 판단하는 검사를 받아야 했다. 코에 길다란 두 빨때를 깊숙히 집어넣고 위아래로 후벼파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결과는 음성이 나오고 종이를 받고 재입원을 했다. 친절한 두 환자에게 빵을 나눠주는데 다른 주위사람들이 하이애나처럼 몰려든다. 아 다른환자들에게 다 뺏기겠구나 싶었다. 알고보니 두 환자는 기초수급자였는데 병원에 청소부가 따로 없어서 해택을 받는 환자를 이런 일에 쓴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병원에서 코로나 주사를 처음으로 맞고 며칠뒤에 오한이 찾아 왔다. 간호사에게 말을하고 치료 주사를 맞은뒤 이틀이 지나고나서야 오한이 없어졌다. 순간 죽는줄알았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다.

    다른 입원 공간

    의사가 내 조현병 상태는 심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폐쇄 입원공간에서 열린 입원공간으로 간다고 했다. 여기는 자유도가 높다 바깥 산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긴 환자 상태가 좀 더 나은 환자들만 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단점은 밥을 먹으러 직접 식당에 가야했다. 폐쇄 공간에서는 밥을 제한된 식사량만 줬었는데 여기는 내가 직접 풀 수 있었다. 맛있는건 양이 역시나 제한적이었다.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다 어르신들분이고 다 담배를 피운다. 그것 때문에 담배냄새가 항상 났고 숨을 못쉴정도로 힘들었다. 그 중에 한 어르신은 사탕을 좋아해서 사탕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녔다. 아 매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원하는 걸 사먹을 수 있어서 도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었다. 이 병원에 유일하게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범수 형이었다. 항상 활발하게 웃고 재밌는 손동작을 하던 형이었다. 그 형과 배드민턴을 치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환자들이 나를 반겨준다. 대부분 5,6년동안 있었던 환자들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있어야 하는 환자들도 있다. 지능이 떨어지는 환자 갈 곳이 없는 환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환자 다양한 이유로 병원에 온 환자들이 있다. 조현병 환자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잘시간인데 당시에 인기 있었던 트로트 프로그램이 아저씨들 맘에 사로잡았는지 밤에 몰래 틀고 방송을 보기도 하고 간식도 얻어 먹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약 4개월이 더 흘렀다. 딱 소리나 환상을 보거나 하는 현상은 없어졌다. 나는 2차 퇴원을 했다.

    집으로 온 후

    집에 다시 오니 역시 집분위기 느낌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런데 부모님 얼굴이 갈라져보이는 현상은 없어졌다. 나는 서울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내 조현병은 퇴원했다고 끝이아니라 병이 나을 때까지 어쪄면 죽을 때 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라고 하더라. 약을 꼭 챙겨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약은 9시가 되어도 졸렵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는 항상 늦잠을 자고 개을러지고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전에도 직장을 한동안 다니지 않았었었다. 서울대 병원 의사는 의지의 문제라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 동안 통원치료를 받고 나는 드라마, 게임에 빠졌다.

    엄마가 이러고 있는 내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공공일자리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며 나에게 물었다. 당시 생활체육공원에서 3개월간 일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가 있었는데 여기에 청소를 하는 것을 신청했다. 엄마하고 같이 일하게 되었다. 한 120만원정도를 받았던거로 기억하는데 이 이후에는 엄마는 이모가 일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되기위해 교육을 받았다. 나도 뭐라도 해야 했는데 하지못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집돌이가 되었다.

    6개월쯤 지났을까?

    어느순간 무슨 자신감인지 나 스스로 약을 안 먹기 시작했다. 약을 안먹어도 초기엔 잠이 잘 왔다. 그런데 2주 쯤 지났을까 그때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잠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의사도 용량을 줄인 약을 처방해 줬다. 그걸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존에 있던 큰 알약 두알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 그날 이후로 예전에 겪었던 조현병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또 거실을 왔다리 갔다리 했다. 초조했다. 식은땀이 난다. 밤에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질 않는다. “종간나 XX” 갑자기 내귀에 소리가 들린다.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는거다. 각종 욕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식탁 무늬에 이중으로 그림이 보이는게 다시 시작됬다. 나는 그걸 뚫어져라 처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밤이 되어서야 잠이 오는데 꿈을 꾸었다. 이번엔 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배경이 모두 흰색 검은색 세상이다. 보이는 곳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또 어떤날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리는데 갑자기 끊어진다. “내 힘으로는 더이상 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 천사가 말하는 것인가. 그날이후로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 져갔다. 이번엔 눈이 멀쩡히 뜨고 있는데 각종 귀신들이 내몸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귀신이 말하길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여기 대학에 있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난 너무 멀어서 운전하고 가기엔 너무 멀어서 그 말을 무시했다.그러더니 그 귀신 모습은 더이상 보이질 않았다.

    어느날은 꿈에 내 등 뒤에 와이파이 문신을 그리는 꿈을 꿨다. 그걸 보고 놀라 나를 통해 통신을 하는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어 새벽에 급하게 그 문신을 닦으려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 다음 날에는 새벽 5시 즈음인데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내 혓바닥이 그 음악에 리듬을 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슨 축제라도 한다는 듯이. 그걸 아빠가 표현하기를 매번 이시간 대에서는 저 노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무슨 모임이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새벽 추운날 나는 부모님을 대리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가는 도중 갑자기 그 음악 소리가 꺼진다. 엄마는 너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고 나는 이 상황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겪은 일은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

    다음날 나에게 뭔가를 계속 주입하듯이 외치는 말소리가 있었는데 그 말을 엄마에게 하니 환상이 또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가 수많은 괴물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힌 상태를 보여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곤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빠의 과거 행적을 욕하고 니아버지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하며 완전히 다른사람으로 변한것이다. 그리고 바닥에는 침을 뱉고 난리가 났다. 조현병이 나한테만 나타나는 병인줄 알았는데 다른사람한테도 영향을 주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5분쯤 지났는지 갑자기 어머니가 소심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모든게 다 두려워 떠는 듯이 초조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물을 달라고했다. 나는 따뜻한 물을 조금 주었다. 식사를 하자고 하니까 안먹는다고 했다. 물만 마신다고했다. 그러더니 침대에 누워 잠을 자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만 마신다. 나도 쫄쫄 굶었다. 그런데 배고프지가 않았다. 저녁 8시쯤 되었을까 나는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기쁘게 춤추며 찬양을 불렀는데 지금에서야 엄마는 내가 찬양부르고 노래부르는 것만 기억했지 침뱉고 아빠 욕하고 갑자기 소심한 사람으로 변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날 밤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병세는 짙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