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곳은 충북기독병원 꽤 오래된 낙후된 병원입니다. 이곳에서 살게되었습니다. 시간이 4시 30분 식사부터 하게되었습니다. 반찬은 부실했지만 먹을만 했습니다. 그리곤 6시 였나 7시즈음에 약을 먹었습니다. 병실에는 약 6인 정도가 있었는데 제가 있던 병실의 환자는 이러했습니다. 한 아저씨는 뇌수술을 받았는지 뇌의 일부분이 없이 잘려져 나가있었고 오른쪽에는 성경을 아끼던 어떤 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만 찾는 그리곤 보진 않는 20대 초반 어린애도 있었고 정상인처럼 보이는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tv가 있었는데 없는 병실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름을 다 기억하지만 지금은 이름을 너무 오래되서 그런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당시에 먹었던 약은 올란자핀 자이프렉사 한 알 이였습니다. 오전 6시가 아침식사인데 너무 졸려워서 먹고 바로다시 자곤 했습니다. 그 다음날 밤 날이 추워 천장에 설치되있던 난방기가 소리가 납니다. “딱 딱 딱” 전 이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조현병 초기에 들었던 그 소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기 위해 이 소리를 듣게 한거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병원의 일과

정신병원의 일과는 단순합니다. 아침 5시 50분에 아침먹기 자거나 tv보기 11시 45분에 점심먹기 4시 45분에 저녁먹기입니다. 약은 환자마다 다르지만 식후 한시간이후에 먹었습니다. 아침 10시 30분에 산책을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제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추워서 하지 않았습니다. 10시에는 간식시간이었는데 돈을 미리 넣어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 미리 신청하여 간식 리스트에 있는 간식을 적고 환자들을 관리하는 남직원(명칭이 있었는데 까먹음)에게 제출을 합니다. 그러면 화요일에 간식을 받습니다. 문제는 간식 도둑들이 많아서 환자들끼리 싸움도 나고 밤에 몰래 훔치다 걸리기도 하고 그래서 대부분이 화요일에 일주일치 간식을 다 먹어버리기도 합니다. 2시에는 사회복지사가 화수목금 별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화요일은 다른그림찾기 종이를 주면서 찾는 걸 하고 수요일은 노래방, 목요일은 그림그리기 금요일은 영화보기를 한시간 가량 합니다. tv도 재미 없어서 옆에 있는 형에게 성경을 빌려 하루종일 성경만 들이다 봤습니다. 개역개정 전의 성경입니다. 토요일은 아무것도 없고 일요일은 예배시간인데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방송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문제는 스피커 상태가 좋지 않은지 뭐라고 하는지 집중도 안되고 잘 듣지 못하였습니다.
의사와의 상담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저 단순한 질문만 끝내고 다른 환자 보러가기 바쁩니다. 제가 질문을 꺼내지 않는 이상 그냥 가버립니다. 저녁 8시쯤 되면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개인당 3000원 주고 살 수 있는 전화카드를 구입후 충전식으로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엄마와의 통화가 길어 항상 나중에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머리를 잡아당긴날에 머리가 많이 뽑혀 나갔다고 했습니다. 차츰 내가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병이 깊진 않은지 2개월정도 정신병원에 있은 후에 퇴원을 했습니다.
집에 온 후
집에 온 후 집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살던 그 집과 분위기가 뭔가 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딱”소리는 나진 않지만 집이 예전 집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 이마가 좌우로 갈라진게 보입니다. 엄마는 팔자주름에 심히 파인 흉터가 보입니다. 제 눈이 정상이 아닙니다. 이걸 알려주고 난 뒤 부모님은 아직 내 병이 낫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재입원을 권고 했다. 나도 받아드렸다.
재입원
병원에 가기전에 친절한 환자가 두명 있었는데 변기가 믹힐 때 뚫어주는 착한 두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한테 보답하고 싶어서 파리바게트 빵과 두유를 선물해주려고 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니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나를 병원에 내보냈다. 코로나 음성인지 양성인지 판단하는 검사를 받아야 했다. 코에 길다란 두 빨때를 깊숙히 집어넣고 위아래로 후벼파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결과는 음성이 나오고 종이를 받고 재입원을 했다. 친절한 두 환자에게 빵을 나눠주는데 다른 주위사람들이 하이애나처럼 몰려든다. 아 다른환자들에게 다 뺏기겠구나 싶었다. 알고보니 두 환자는 기초수급자였는데 병원에 청소부가 따로 없어서 해택을 받는 환자를 이런 일에 쓴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병원에서 코로나 주사를 처음으로 맞고 며칠뒤에 오한이 찾아 왔다. 간호사에게 말을하고 치료 주사를 맞은뒤 이틀이 지나고나서야 오한이 없어졌다. 순간 죽는줄알았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다.
다른 입원 공간
의사가 내 조현병 상태는 심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폐쇄 입원공간에서 열린 입원공간으로 간다고 했다. 여기는 자유도가 높다 바깥 산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긴 환자 상태가 좀 더 나은 환자들만 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단점은 밥을 먹으러 직접 식당에 가야했다. 폐쇄 공간에서는 밥을 제한된 식사량만 줬었는데 여기는 내가 직접 풀 수 있었다. 맛있는건 양이 역시나 제한적이었다.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다 어르신들분이고 다 담배를 피운다. 그것 때문에 담배냄새가 항상 났고 숨을 못쉴정도로 힘들었다. 그 중에 한 어르신은 사탕을 좋아해서 사탕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녔다. 아 매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원하는 걸 사먹을 수 있어서 도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었다. 이 병원에 유일하게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범수 형이었다. 항상 활발하게 웃고 재밌는 손동작을 하던 형이었다. 그 형과 배드민턴을 치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환자들이 나를 반겨준다. 대부분 5,6년동안 있었던 환자들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있어야 하는 환자들도 있다. 지능이 떨어지는 환자 갈 곳이 없는 환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환자 다양한 이유로 병원에 온 환자들이 있다. 조현병 환자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잘시간인데 당시에 인기 있었던 트로트 프로그램이 아저씨들 맘에 사로잡았는지 밤에 몰래 틀고 방송을 보기도 하고 간식도 얻어 먹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약 4개월이 더 흘렀다. 딱 소리나 환상을 보거나 하는 현상은 없어졌다. 나는 2차 퇴원을 했다.
집으로 온 후
집에 다시 오니 역시 집분위기 느낌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런데 부모님 얼굴이 갈라져보이는 현상은 없어졌다. 나는 서울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내 조현병은 퇴원했다고 끝이아니라 병이 나을 때까지 어쪄면 죽을 때 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라고 하더라. 약을 꼭 챙겨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약은 9시가 되어도 졸렵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는 항상 늦잠을 자고 개을러지고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전에도 직장을 한동안 다니지 않았었었다. 서울대 병원 의사는 의지의 문제라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 동안 통원치료를 받고 나는 드라마, 게임에 빠졌다.
엄마가 이러고 있는 내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공공일자리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며 나에게 물었다. 당시 생활체육공원에서 3개월간 일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가 있었는데 여기에 청소를 하는 것을 신청했다. 엄마하고 같이 일하게 되었다. 한 120만원정도를 받았던거로 기억하는데 이 이후에는 엄마는 이모가 일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되기위해 교육을 받았다. 나도 뭐라도 해야 했는데 하지못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집돌이가 되었다.
6개월쯤 지났을까?
어느순간 무슨 자신감인지 나 스스로 약을 안 먹기 시작했다. 약을 안먹어도 초기엔 잠이 잘 왔다. 그런데 2주 쯤 지났을까 그때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잠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의사도 용량을 줄인 약을 처방해 줬다. 그걸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존에 있던 큰 알약 두알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 그날 이후로 예전에 겪었던 조현병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또 거실을 왔다리 갔다리 했다. 초조했다. 식은땀이 난다. 밤에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질 않는다. “종간나 XX” 갑자기 내귀에 소리가 들린다.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는거다. 각종 욕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식탁 무늬에 이중으로 그림이 보이는게 다시 시작됬다. 나는 그걸 뚫어져라 처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밤이 되어서야 잠이 오는데 꿈을 꾸었다. 이번엔 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배경이 모두 흰색 검은색 세상이다. 보이는 곳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또 어떤날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리는데 갑자기 끊어진다. “내 힘으로는 더이상 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 천사가 말하는 것인가. 그날이후로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 져갔다. 이번엔 눈이 멀쩡히 뜨고 있는데 각종 귀신들이 내몸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귀신이 말하길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여기 대학에 있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난 너무 멀어서 운전하고 가기엔 너무 멀어서 그 말을 무시했다.그러더니 그 귀신 모습은 더이상 보이질 않았다.

어느날은 꿈에 내 등 뒤에 와이파이 문신을 그리는 꿈을 꿨다. 그걸 보고 놀라 나를 통해 통신을 하는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어 새벽에 급하게 그 문신을 닦으려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 다음 날에는 새벽 5시 즈음인데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내 혓바닥이 그 음악에 리듬을 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슨 축제라도 한다는 듯이. 그걸 아빠가 표현하기를 매번 이시간 대에서는 저 노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무슨 모임이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새벽 추운날 나는 부모님을 대리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가는 도중 갑자기 그 음악 소리가 꺼진다. 엄마는 너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고 나는 이 상황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겪은 일은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
다음날 나에게 뭔가를 계속 주입하듯이 외치는 말소리가 있었는데 그 말을 엄마에게 하니 환상이 또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가 수많은 괴물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힌 상태를 보여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곤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빠의 과거 행적을 욕하고 니아버지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하며 완전히 다른사람으로 변한것이다. 그리고 바닥에는 침을 뱉고 난리가 났다. 조현병이 나한테만 나타나는 병인줄 알았는데 다른사람한테도 영향을 주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5분쯤 지났는지 갑자기 어머니가 소심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모든게 다 두려워 떠는 듯이 초조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물을 달라고했다. 나는 따뜻한 물을 조금 주었다. 식사를 하자고 하니까 안먹는다고 했다. 물만 마신다고했다. 그러더니 침대에 누워 잠을 자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만 마신다. 나도 쫄쫄 굶었다. 그런데 배고프지가 않았다. 저녁 8시쯤 되었을까 나는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기쁘게 춤추며 찬양을 불렀는데 지금에서야 엄마는 내가 찬양부르고 노래부르는 것만 기억했지 침뱉고 아빠 욕하고 갑자기 소심한 사람으로 변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날 밤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병세는 짙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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