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광고를 통해 당근 알바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근앱이 단순히 중고거래를 하는 수준에 넘어 다양한 기능을 한 앱으로 성장해 왔던 것이다.
당근 알바에 신호수를 구한다는 글이 보인다. 다행히도 집앞에 있는 콘크리트 공장이었다. 알아보니 규모가 꽤 커다랗다. 난 여기에 신청을 했다. 생산직 6개월 근무했습니다. 집하고 가까워 신청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라고 적었다. 내일 나올 수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하고 나는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아침밥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작업화를 신어야 해서 조금 불편했지만 일당이 11만원이라 만족했다. 후에 알게 됬지만 이 일이 직업소개소 같은 용역업체 프리렌서를 구하는 일인줄 알게되었다. 이건 4대보험이 없다. 정직원이 아니라서
주로 하는일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이동하는거였는데 호루라기를 불어 중량물이 작업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이동 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정혀진공간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일이었다. 발은 아프지 일은 지루하지 꽤나 고생했었다.
4일쯤 근무했나 이젠 그만 나오라고 한다. 내가 일을 잘 못하는지 더이상 부르지 않고 직업소개소 사장이 이번엔 지코라는 회사에 가보라고 한다. 5일쨰 되는날에 지코에 갔더니 거기 사장이 화기 안전에 대한 일을 하라고 한다. 사장이 용접을 하는동안 불 안나게 감시하는 일이었다. 소화기를 근처에 두고 나는 사장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떻게 보면 꿀알바 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돈이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용역업체 사장한테 일한 돈을 달라고 했다. 다음날 56만원이 들어왔다. 11만원 4번에 12만원 1번이 들어온 것이었다. 꽤나 쏠쏠했다. 더이상 일이 없는지 나는 당근알바에 다른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식품회사 제함기 op 를 구하는 글이었다.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 보통이면 왠만한일자리들 경쟁이 심해서 일자리구하기가쉽지않은데 여긴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던것이다. 조건은 잔업2시간이 필수이다. 토요일근무는 선택이지만 글을 읽어보면 해야할 눈치이다. 여기에 지원을 했다. 일은 힘들겠지만 한달 월급을 계산해 보니 350만원 수준이었다. 소득세 3.3%를 때도 말이다. 하루 일급이 138000원 정도 였다. 나는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다른곳처럼 이력서를 쓸 필요도 없이 사람을 바로구해 바로 일자리에 투입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지원을 했고 곧바로 출근을 했다.
이제 조현병과는 거리가 멀어진 기분이다. 그래도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다. 다시는 악몽이 반복되지 않기위해서라도 말이다. 엄마가 내 꾸부러진 왼손의 모습을 보시곤 자주 풀어주신다. 약의 부작용이 남아있다. 내 모습이 꾸부정 해보인다고 하셨다.
일은 쉬웠다. 쉽게 적응하고 잘 나갔었다. 제함기는 박스를 제함기에 넣으면 제함기가 알아서 박스를 열어 아래에는 테이프가 감기고 박스에 물건을 담을 수 있게 하는 기계였다.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파란색 사이즈가 다른 박스들이 있다. 세팅도 따로 해줘야 한다. 정해진 숫자에 맞춰서 세팅을 해준다. 그러면 높낮이가 맞춰진다. 밥 박스도있다.
일을 한지 2개월쯤 이었나 공단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전화가 온것이다. 220만원(세전)에 8시간 일하는 것이었다. 자재물류라는데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고 아쉽지만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4개월쯤 되었을때 새로운 설비가 들어오고 일이 바빠지게되었다.밥을 잠시 쉬고 치킨박스가 들어오는데 해야하는 물량이 기존에 일하던 양에 비해 엄청났다. 제함기는 오류가 자꾸나고 나는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위기상황에 대처를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일에서 빠지게 되었다. 더이상 제함실에서 일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짤리는줄 알았다.
그런데 용역대표가 전화를 걸어올 때 다른 일자리가 없냐고 했을 때 다른 파트에 할 다른 일이 있다고 거기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불덩이 솥단지

다른파트에서 일한 첫날은 지옥이었다. 오징어를 삶아야 하는데 이많은 오징어를 나혼자 다 삶으라 한다. 일 가르치는 분도 대충가르치고 그냥 가버렸다. 문제는 온도였다. 여기는 환풍이 안되고 뜨거운 열기에 죽음을 느낄 수준의 공포를 느꼈다. 일하는 분위기가 어떻냐면 군대에서 볼법한 커다란 솥단지에 건지고 삶고 반복해야만 했다. 나는 너무 목이 말라 거기 있던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염소냄새가 나긴했지만 우선 살고 볼 일이었다. 이 일을 차장님에게 말하고나선 다음주엔 자기가 도와줄 사람들 붙여준다고 했다. 파트가 바뀐 이 일을 계속 해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만둘 생각까지 있었다.
공단아저씨한테 전화했다. 혹시 일자리 없냐고 말이다. 네 라고 대답만 할 뿐 별 말이 없었다. 기다려야 할듯 하다. 파트가 바뀐곳은 5시 30분에 끝나 추가근무도 하지 않는다. 다행히 불덩이에 들어가는 날은 일주일에 한번이고 나머지 날에는 야채 계량을 해야한다. 야채계량은 쉬운일이다. 야채를 소분해서 비닐에 담아 냉동창고에 넣어두는 일이다. 크기도 다루는 것도 다양하다 0.6키로에서 11.25키로까지 그리고 15키로되는 나에겐 꽤나 무거운 야채를 냉동창고에 싣고 날라야 한다. 이 공간에 한 가지 단점은 퇴근후에 기름 쩐내가 심해서 세탁을 자주했어야했다. 토요일근무도 없다. 월급을 계산해보니 237만원이다. 뭔가 공허해진 기분이고 아쉬운 생각이든다. 월급이 1/3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아쉬운일이다. 일단은 새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녀야 할 듯 하다.
2주차 불덩이에 들어갈 날이다. 이번엔 차장님이 일을 도와주신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온도를 체크하는데 36도까지 올라간다. 습기는 70이상이었다. 작업을 후딱하고 빨리 끝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역할분담도 하였다. 하지만 오후에는 시간이 안되셔서 청양고추와 당근은 내가하고 마무리 청소 특히 하수구청소는 내가 해야만 했다. 청양고추는 삶기시작하면 엄청난 기침을 유발한다. 화생방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3주차가 되었다.
조현병 약은..
나는 평일에 병원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가곤 했다. 상담을 하기도 했고 약만타는일도 많았다. 상담을 해봤자 일상적인 얘기들 뿐이라서 아쉬웠다. 내가 정신병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조현병 약은 5개를 먹는다. 아래는 처방전과 인터넷의 도움을 받았다.
명인할로페리돌정5밀리그램 – 이게 반쪽짜리 연두색 약인가보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싱병적 증상에 사용 부작용은 몸이 뻣뻣해지고 움직임이 느려짐을 느낀다는데 내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왼손이 꾸부러지는게 이 부작용인듯 하다.
환인벤즈드로핀정1밀리그램 – 할로페리돌의 부작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약이다. 하지만 역시 부작용이 있다. 바로 변비
큐로켈정100밀리그램 – 항정신병약이고 조현병 치료에 사용된다는데 졸림이나 어지러움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직까진 어지러움은 안느껴봤지만 아침에 졸립고 출근 운전하면서 졸음에 위험하긴 한 편이다. 이것 때문에 잠을 억지로라도 크게 늘려 8시간정도 자는 편이다.
삼진디아제팜정5밀리그램 – 불안과 긴장을 줄이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조현병 자체를 치료하는 주된 항정신병약이라기보다 진정 효과를 보기위한 약이라고 한다.
로라반정1밀리그램 – 벤조디아제핀계 항불안제 진정제에 속하고 이것도 졸립게 한다고 한다.
왜 이 약을 저녁이후 9시즈음에 먹을까? 난 병원에 있을 때 9시즈음에 약먹고 바로 잤었다.
그리고 술도 안먹기 때문에 다행이다. 술을 먹으면 약으로 인한 진정효과가 쌔져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그밀 아침저녁과 아기오를 저녁먹고 식후30분이나 바로 먹었다. 아기오가 병원에 없기도 하고 재고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좀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약국마다 수소문을 하여 다행히도 집근처 약국이 아기오를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총 7개의 약을 먹는다. 5개는 조현병을 위한 약 2개는 변비를 위한 약이다.
앞으로의 인생
병원에 나온지 이제 3년이 되어간다. 참으로 긴 시간이 지났다. 일은 적응했다. 조현병도 통원 약물치료로 잘 버티고 있다. 손을 꾸부리는 것만 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오백만원 정도를 모았다. 주식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고 저축하기로 결심했다. 사회생활도 만만치는 않다. 매일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쑤시다. 근육통이 있다. 그래도 출근한다. 딱히 방법이 아직 내겐 없다.열심히 사는 수밖에.. 부모님 나이도 이제 70대이니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같은 경우는 약을 끊고 재발한 경험이 있기에 조현병 약을 늙어 죽을때까지 먹는거라 들었다. 약을 꾸준히 먹는것에 조심해야한다.
나는 높은곳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었다. 부모님에게 피눈물 흘리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무모하고 어리석었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것에서 부터 작은것에 반응해 큰것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돌아본다.
이제는 조현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그래도 약은 꾸준히 먹어야겠지 않겠는가. 다시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다시 병원에 가게된다면 그땐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빵 간호사가 했던말이 기억이 난다. 4번째 돌아온 사람은 치매걸린 환자 같다고.. 그 말을 듣곤 더이상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나이가 서른여덟인데 결혼할 나이아닌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는 여자가 없다. 친구도 없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형도 늦은 나이에 소개받아 그 형수가 될 사람과 결혼을 할 예정이다. 참 기쁜 일이다. 난 형이 결혼을 안하고 혼자 계속 사는 줄 알았다.
조현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이 많은줄 알고있다. 나도 그 많은 조현병 중에 한 케이스이겠지만 아직도 병원에 살아야 하는사람 통원치료하는사람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분들도 새로운 신약이 나와서 조현병을 더 잘 다스리는 완치할 수 있는 병이 되길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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