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박스테이프나 스카치테이프를 뜯을 때 특유의 “찌익”, “쫘악” 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테이프를 천천히 떼면 조용한데 빠르게 뜯으면 유난히 큰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단순히 테이프가 공기를 가르면서 발생하는 소리일까요?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물리 현상이 숨어 있습니다.
테이프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접착제가 늘어나고 끊어지는 과정, 미세한 균열, 순간적인 접착과 분리의 반복이 일어나면서 소리가 발생합니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테이프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가 접착층 내부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과 그 균열이 만들어내는 약한 충격파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테이프를 뜯을 때 왜 소리가 날까?
테이프에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필름뿐만 아니라 표면에 접착제층이 붙어 있습니다.
테이프를 붙여 놓았다가 떼면 접착제가 한순간에 모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테이프가 떨어지는 부분에서는 접착제가 늘어나고, 일부가 끊어지면서 분리가 진행됩니다.
이때 테이프가 아주 매끄럽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붙음 → 늘어남 → 끊어짐 → 다시 붙음 → 다시 끊어짐
과 같은 과정이 매우 빠르게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스틱-슬립(stick-slip)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테이프가 한 번에 부드럽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붙잡았다가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테이프와 접착층에 에너지가 축적됐다가 빠르게 방출되고, 그 에너지가 진동과 공기의 압력 변화로 전달되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테이프를 빠르게 뜯을수록 소리가 커지는 이유
테이프를 천천히 뜯을 때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테이프를 빠르게 잡아당기면 접착층이 훨씬 빠르게 변형되고 분리됩니다.
빠른 속도에서는 접착제가 늘어나는 과정과 균열이 발생하는 과정이 더욱 역동적으로 진행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에너지가 방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테이프를 빠르게 뜯을수록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날카로운 “쫘악” 소리가 더 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테이프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접착제의 종류와 두께, 테이프의 재질, 붙어 있는 표면, 테이프를 떼는 속도와 각도 등에 따라서 소리의 크기와 음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테이프 소리의 핵심은 ‘스틱-슬립’ 현상
테이프의 소리를 이해하려면 스틱-슬립 현상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스틱(stick)은 말 그대로 붙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슬립(slip)은 미끄러지면서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테이프를 잡아당기면 접착층이 버티면서 테이프에 에너지가 쌓입니다. 어느 순간 접착력이 버티지 못하면 테이프가 갑자기 앞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면 다시 접착층이 늘어나면서 다음 분리가 준비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일정한 진동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소리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08년 인도과학원(IISc) 연구팀은 접착테이프를 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향 신호를 분석해 이러한 스틱-슬립 과정과 소리의 발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에서는 테이프가 떨어지는 전선(peel front)의 움직임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불규칙하고 간헐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는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26년 2월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서는 테이프의 날카로운 소리가 단순한 접착제의 진동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연구팀은 테이프를 떼는 순간 접착층 내부에서 발생하는 아주 작은 균열(fracture)에 주목했습니다.
이 미세한 균열이 테이프의 폭 방향으로 매우 빠르게 이동하면서 테이프 가장자리에 도달하고, 그 순간 공기 중으로 약한 충격파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듣는 “찌익” 하는 소리는 테이프가 단순히 흔들려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접착층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이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충격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의 Physical Review E에 게재됐습니다. 연구 논문의 제목은 **「Screeching sound of peeling tape」**입니다.
테이프 연구를 진행한 대학과 연구팀은 어디일까?
이번 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곳은 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교(King Abdullah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KAUST)입니다.
KAUST는 사우디아라비아 투왈(Thuwal)에 위치한 연구 중심 대학으로, 이번 테이프 연구는 대학의 Physical Science and Engineering Division과 관련 연구진이 참여해 진행했습니다.
논문의 저자에는 다음 연구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Er Qiang Li
- Paul W. Riker
- Sriram Rengarajan
- Zi Qiang Yang
- Kenneth R. Langley
- Ravi Samtaney
- Sigurdur T. Thoroddsen
연구진의 소속을 보면 KAUST뿐만 아니라 중국의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of China(중국과학기술대학교)와 인도의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Madras(IIT Madras) 연구자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즉 한 대학의 단독 연구라기보다는 여러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였습니다.
KAUST의 Sigurdur Thoroddsen 교수 소개
연구를 이끈 Sigurdur Thoroddsen 교수는 어떤 연구자인가?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인물 중 한 명은 Sigurdur T. Thoroddsen 교수입니다.
Thoroddsen 교수는 KAUST의 기계공학 교수이며 High-Speed Fluids Imaging Laboratory를 이끌고 있습니다.
KAUST에 따르면 그는 2009년 KAUST 설립 초기부터 합류했으며, 그 이전에는 싱가포르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서 기계공학 부교수로 근무했습니다.
학력도 흥미롭습니다.
- 1982년 아이슬란드대학교(University of Iceland) 기계공학 학사
- 1986년 Colorado State University 토목공학 석사
- 1991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응용역학 박사
- 1994년 UC San Diego Institute for Nonlinear Sciences 박사후연구원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유체역학이며 물방울, 기포, 난류, 미세유체, 고속 충돌과 같은 매우 빠르게 일어나는 물리 현상을 연구합니다.
특히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해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매우 짧은 순간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분석하는 연구로 유명합니다.
연구팀은 테이프를 어떻게 관찰했을까?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테이프를 뜯고 소리를 녹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고속 카메라와 마이크를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한쪽에서는 테이프의 접착층 내부에서 균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촬영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기 중에서 발생하는 충격파를 관찰했습니다.
특히 연구진은 슐리렌(schlieren) 영상 기법을 이용해 공기 중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충격파를 시각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대의 마이크와 두 대의 고속 카메라를 동기화해 특정 균열이 발생한 순간과 실제 소리가 발생한 순간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접착층 내부의 미세한 균열이 테이프의 가장자리에 도달할 때 공기 중에 약한 충격파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테이프의 날카로운 소리가 여러 개의 약한 충격파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2014년 연구에서도 초음파가 발견됐다
흥미롭게도 이번 연구가 처음으로 테이프에서 특이한 음향 현상을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2014년에는 KAUST의 Jeremy O. Marston, Paul W. Riker, Sigurdur T. Thoroddsen 연구진이 Scientific Reports에 테이프를 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음파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고속 영상과 음향 측정을 동시에 진행했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약 20kHz 부근뿐 아니라 약 50kHz 정도의 강한 초음파 성분도 관찰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음향의 주요 주파수가 테이프의 접착층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fracture bands(균열 밴드)와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는 이후 테이프의 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습니다.
2010년에는 테이프 내부의 균열을 직접 촬영했다
더 앞선 2010년 연구에서는 Thoroddsen 교수와 일본 긴키대학교(Kinki University) 연구진이 고속으로 테이프를 떼어내면서 접착층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관찰했습니다.
연구진은 테이프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약 4mm 길이의 영역에 규칙적인 균열 구조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테이프 폭 방향으로 약 220μm 크기의 균열 밴드가 만들어졌고, 이 균열이 폭 방향으로 초당 300m가 넘는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이 연구는 테이프를 뜯을 때 발생하는 소리가 단순한 표면 마찰이 아니라 접착층 내부에서 발생하는 매우 빠른 파괴 현상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였습니다.
테이프 소리는 결국 ‘작은 파괴’가 만들어내는 소리다
정리하면 테이프를 뜯을 때 발생하는 소리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테이프를 잡아당김 → 접착제가 변형됨 → 접착층에 에너지가 축적됨 → 미세한 균열 발생 → 균열이 빠르게 이동 → 테이프 가장자리에서 충격파 발생 → 공기가 진동 → 우리가 소리를 들음
따라서 우리가 흔히 듣는 테이프의 “찌익” 소리는 사실상 수많은 미세한 파괴 현상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만들어지는 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테이프마다 소리가 다른 이유
같은 방법으로 테이프를 뜯어도 제품마다 소리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테이프의 소리는 다음과 같은 요소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접착제의 성질
접착제가 얼마나 잘 늘어나고 끊어지는지에 따라 균열의 발생 방식이 달라집니다.
테이프의 재질
테이프를 구성하는 필름의 탄성과 두께도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테이프를 뜯는 속도
일반적으로 빠른 박리에서는 동적인 스틱-슬립과 균열 현상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테이프를 떼는 각도
테이프와 표면 사이의 각도 역시 접착층에 전달되는 힘의 방향과 크기에 영향을 줍니다.
붙어 있는 표면
유리, 종이, 플라스틱, 금속처럼 서로 다른 표면에서는 접착 상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테이프가 같은 소리를 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테이프를 뜯으면 빛과 X선도 발생할 수 있다?
테이프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더욱 놀라운 현상도 발견됩니다.
접착테이프를 빠르게 떼어낼 때 아주 미세한 빛이 발생하는 현상이 알려져 있으며, 진공 환경에서는 X선이 관찰된 연구 사례도 있습니다.
이는 접착제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전하가 분리되는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연구되어 왔습니다.
다만 이것은 일상적으로 테이프를 뜯을 때 위험한 수준의 X선이 나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접착과 파괴 과정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물리 현상의 하나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듣는 테이프 소리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평소에는 테이프를 뜯으면서 나는 “찌익” 소리를 그저 접착제가 떨어지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접착층 내부에서 변형, 스틱-슬립, 미세한 균열, 파동, 충격파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복잡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6년 연구에서는 고속 카메라와 마이크, 슐리렌 영상 등을 이용해 테이프의 날카로운 소리가 미세한 균열이 테이프 가장자리에 도달하면서 만들어내는 약한 충격파의 연속이라는 중요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뜯는 작은 테이프 한 조각에도 재료과학, 음향학, 파괴역학, 유체역학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셈입니다.
참고한 주요 연구
- Li, E. Q. et al., Screeching sound of peeling tape, Physical Review E, 2026.
- Marston, J. O., Riker, P. W. & Thoroddsen, S. T., Generation of ultra-sound during tape peeling, Scientific Reports, 2014.
- Thoroddsen, S. T. et al., Stick-slip substructure in rapid tape peeling, Physical Review E, 2010.
- Kumar, J., De, R. & Ananthakrishna, G., Intermittent peel front dynamics and the crackling noise in an adhesive tape, Physical Review E, 2008.
이처럼 아주 평범한 테이프 소리도 연구자들에게는 접착제의 성질과 재료의 파괴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물리학적 현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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